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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05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기사


※ 한참 재미나게 봤던 책인데.. 솔직히 지금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끄적인 글마저 없었다면, 까막고기 먹은 고냥이 한마리가 되어 널부러져 있겠지.
....기억은, 너무 짧고 믿을수가 없다.


처음 이 책을 접했던 것이 언제 였나... 광고문구로, 혹은 대담회에 얼굴을 내미는 홍세화를 본 것을 제외하고나서는 어느 술자리 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벌써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군..

마지막 로맨티스트를 자처하는 선배였는데, 기타를 잘치고 술을 잘 마시던 선배였다. 물론 나와는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지. 그는 아직 키스한번도 못해본 28살의 청년임을 부끄러움뒤에 순수함을 감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치기어리게 서로에게 영원을 약속하며, 불안한 미래에 우리의 관계를 애써 떠들어 대는 잡담으로 묻히는 그 순간. 그 선배가 이야기 했었다. '홍세화가 쓴 책에서 인상깊은 이야기가 있어.... 똘레랑스.. 라구 관용이래... 우리도 그래야지.. 우리는 흑백논리로 철저히 교육받은거잖아? ...'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세상을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20대 초반의 즈음 그의 그러한 사고의 전개를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다. 아직도 내가 모르고, 저렇게 전개하는 방식이 있구나. 홍세화의 나는 빠리 택시 운전기사. 언제고 꼬옥 읽어봐야지.

다시 쓸떼없는 잡담으로 나의 머리는 침전되어 갔고, 그렇게 책은 잊혀졌다. 아니, 기억하지 않았다. 사실 꼬옥 읽으리라고 마음 먹은 책은 늘 늦게 읽기 마련이다. 읽으리라고 마음먹은 것 만큼 책에 대한 나의 환상과 주술이 깊고 막상 책장을 열면 그러한 기대감이 충족되기 보다는 여지없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것에 내가 남들이 추천하는 책을 빨리 빨리 읽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두는 이유일지라.

여하튼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 아직은 낯선 사무실에서 홍세화를 만났다. 내가 그의 책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동안 두권의 책이 나왔고, 그는 이제 한국에 나올수 있는 더 이상 망명자가 아닌 신분이 되어 버렸다. 뭐, 여타의 감상은 접어두기로 하자. 날씨가 어둡고 그로 인해야 가라앉는 내 기분탓으로 감상이 뒤죽박죽 제 멋대로 나가기 일쑤인 날이지만 말이다.

사실 소감이라면 그저 그렇다. [빠리-]는 홍세화라는 한 망명자의 개인적인 수기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수기형식의 자기 고백서. 이렇고 그렇고 저렇게 난 힘들게 살아왔어요- 라고 대중에게 고백하는 글은 정말 싫다. 난 나의 삶 자체로 너무나도 힘이 들기 때문일터이다. 하지만 역시 세간의 회자된 책은 그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의 매력은 마지막 장에 있다. 택시운전 시험으로 시작하여 2년차 택시운전기사가 되기 까지 그렇게 차근 차근 밟아가는 그의 망명생활속에서 마지막 장은 가슴을 울리는 전율과도 같은 것이다.


... 나는 달렸다. 루브르 옆의 리볼리가를 달렸다. 다시 꽁고르드 광장을 지나 쎄느강을 넘어 쌩제르맹 대로를 나는 신나게 달렸다. 온 거리가 비어 있었다. 그렇지. 바스띠유에 가야지. 나는 쎄느강을 다시 건너 바스띠유 광장으로 갔다. 광장은 비어 있고 아득한 옛날의 함성소리만 들릴 듯 말 듯. 나는 레쀠블리끄 광장으로, 다시 일방대로를 질주하여 갈레리 라파예Em와 쁘랭땅 백화점앞을 달렸다. 평소 사람들로 바글대던 그곳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개선문까지 달렸다. 빠리지앵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것일까. 그렇지. 지난밤의 정열을 아늑하게 식히며 잠들고 있겠지. 나는 샹젤리제를 달리면서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 뜻도 없이 소리가 되어 나오는 대로 질러대는 고함이었다. 누구에게인지 알 수 없는 욕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목이 터져라 하고 그리고 택시가 떠나가라는 듯 고함을 질러댔다. 누가 들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었다. 꽁꼬르드 광장을 한바퀴돌고 뽕삐두 강변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나는 목이 아프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곤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건 아주 감깐동안의 일이었다. 뛸르리 옆 강변도로를 지나 지하도에서 나왔을 때, 나는 흥얼대고 있었다. 뽕 뇌프 다리를 바라보며, 곡조가 맏든 안맏든 흥얼댔다. 그냥 나오는 대로, 이 곡조에서 저 곡조로 그리고 가사가 있던 없든 또 틀리면 틀린 대로 그냥 그렇게 흥얼대고 있었다. 강변도로를 빠져와 노트르담 다리를 건너 씨떼 섬에서 노트르담 대 성당을 옆으로 볼때가지도 나는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다시 건너 시떼섬을 빠져나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 쎄느와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곧 쌩 미셜 광장에 닿았다. 단 세시간 전까지도 젊은 이들로 들끓던 광장은 그러나 텅 비어있었다. 그때였다.
바보같이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달렸다. 이제 방향도 없었다. 택시가 가자는 대로 달렸다.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연신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계속 달렸다. 빠리는 텅 비어 있었다. 흐르는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그렇게 아름다웠다. 빠리는. 내가 그 새벽에 달린 빠리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책이 마지막장에 있는 이 문단을 읽을 때.. 가슴에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울컥. 난 그가 겪었던 시대의 아픔이라든가 혹은 그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정의나 민주주의대한 갈망따위는 모른다. 전 시대가 나에게 비난을 내린것과 마찬가지로 난 그들의 흘린 피의 열매를 달콤하게 따먹는 안락한 시대의 대표주자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그들의 비난을 받고만 잊지 않는 반동의 세대이기도 하다. 그때의 장밋빛 꿈을 꾸며 체제에 대항했던 이들이 전부다 어디에 가 있는가?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기성세대들의 판속에 끼어서 이리저리 치이며 전세대와 다름바가 전혀 없는 짓들을 해내는 것이 바로 민주의 투사들 아닌가. 어찌 그들이 우리를 비난하겠는가. 이렇게 딴지는 거는 그야말로 개인주의의 개인주의를 지양하는 나에게 홍세화의 외로움이 그의 인생이 인상적이 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한발짝도 나가보지 못했고, 더구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땅으로는 한번도 떠나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감히 홍세화를 이해한다고 할수 있으랴. 하지만 저 마지막 문단에서 여기 저리 소리를 지르며 달리고 결국 울어버린 그의 마음이 지면을 통해 나에게로 전해져 왔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은 기분이고 느낌이다.

하나의 사족을 더 달아볼까? 난 그의 아내가 궁금하다. 그가 고된 망명 생활속에서도 "씰비"라는 아프로디테에서 일말의 구원을 갈구 하고 있을 때 두아이의 엄마인 그의 아내는 어디에 있었을까? 자의가 아닌 남편의 정치적 노선에 의해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의 아내 말이다.
여자가 아내가 되었을 때, 혹은 엄마가 되었을 때 만큼 슬픔이 있을까? 참 슬프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 하지. 그래도 아내를 잊는 남편은 없고, 가정은 그렇게 지켜나가진다고..정말? 정말 그럴까?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이 아닌데? 정말?(2001-05-15-火)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기사
홍세화 作
창작과 비평사

** 푸른 고양이 **
Posted by bride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