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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21 자기 앞의 생 (1975, La Vie devant Soi)


"에밀아자르"라는 작가도, "로맹 가리"라는 작가도 잘 모른다. 영미 문화권이나, 일본 작가들만 쉽게 접했기 때문에 유럽쪽의 작품세계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을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읽으면서 이 작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얼굴에 총구를 밀어 넣어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에는 "생"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는 동시에 진절머리치게 하는 슬픔이 동시에 공존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모모는 창녀들의 아이들을 몰래 맡아 키우는 일을 하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짜리 아파트에 맨 꼭대기에 사는 그들에게 아이들을 끊임없이 왔다가 간다. 그래도 그 둘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것 처럼 지내지만 시간이란 예외가 없는법. 나이가든 로자 아줌마를 덮치게 되고, 어린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의 생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야기는 "생"에 대해서 한없이 시니컬 하기도 하면서 또한 다시한번 희망을 가져보자고 이야기 한다. 독서의 매력이 그러하듯이 읽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강조 되는 점이 다를것이다. 요즘 내 상태가 그리 해피하지 않아서 일까? 읽으면서 점점 삶이란, 생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져가는가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듯 했다.

아랍인인 모모와 유태인인 로자 아줌마의 동거. 눈이 멀어버린 할아버지. 끊임없이 창녀들을 거느리고 사는 포주. 마음이 따뜻하지만 절대로 아이를 가질수 없는 여장 남자. 이렇게 모모가 사는 세계는 소위 "일반적으로" 이루어질수 없는 것들의 집합체이다. 그 속에서 학교에도 가지 않고, 다른 아이들의 엉덩이를 닦아대며 살아가는 모모의 생이란 어떤 것일까? 절대로 있을수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따듯함. 그것에 작가가 바랬던 생을 지속할수 있는 "손안에 쥔 달걀"과 같은 것이었을까?

기본적으로 작가는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에게 파괴를 당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점차 쇠약해지고 점차 삶의 생기를 읽어가는 사람들. 늙고 버려진 창녀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로자 아줌마 처럼 우리에게도 누군가 우리는 사랑해줄, 모모같은 아이가 필요하다고 역설을 하고 있는 듯하다.

본명이 "로맹 가리"였던 작가는 나이가 들어서 새롭게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써서 다시 데뷔한다. 이미 나올대로 나온 늙은 작가가 어떤 작품을 세상에 내 놓아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듯 하다. 늙은 창녀처럼 되어버린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필명으로써 생명을 부여했던 작가는 아무리 버둥대도 시간에게서 도망칠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지 자살을 해 버리고 만다. 더이상 늙은 창녀로 세상을 살아간 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에는 그를 끝까지 지켜줄 모모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 보다.

나에게 있어서 모모는 무엇일까? 그것이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신념일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시간이 나의 젊음을 앗아간 만큼 나에게 남겨준것이 무엇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이뤄낸것이 있는것인가? 나이를 먹어도 짙게 루즈를 칠하고 젊었을때처럼 엉덩이로 먹고 살면서 만인에게 사랑을 받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로자 아줌마처럼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누군가게에 사랑받기를 갈구하며 살아가는것 같다. 어린 모모가 나타나서 지켜줄때까지.(2005. 06. 21)


<밑줄긋기>

-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수 없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닐 것이다.

- 내가 경험한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 "그곳은 내가 무서울때 숨는 것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는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 법이란 지켜야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 사람들은 창녀들이 젊었을때는 성가시게 쫓아다니지만 일단 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젊은 창녀에게는 포주가 있지만 늙은 창녀에게는 아무도 없다. 나는 할 수 만 있다면 늙은 창녀들만 맡고 싶다.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 줄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쎈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둘직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한 내 생각을 굳이 말하지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기 앞의 생 (1975, La Vie devant Soi)》
- 지은이 : 에밀 아자르 (Emile Ajar)
- 옮긴이 : 용경식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간일 : 2003-05-06 / 357쪽 / 196*135mm (양장본)
- ISBN : 8982816631

** 푸른 고양이 **
Posted by bride100